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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 별세, “내가 몸을 던져 개척한다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만사/세상만사

by ESG-정밀건식세정기 2017. 9. 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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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 별세,

“내가 몸을 던져 개척한다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출처 : ACROFAN=권오길

 

 

 

 

영화 '맨발의 청춘'을 연출한 김기덕 감독이 별세했다. 향년 83세.


김기덕 감독은 최근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으며 7일 오후 3시 2분 숨을 거두었다.

김기덕 감독은 1930년 9월 28일 서울 출생으로 서라벌예술대학 문학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7살의 나이에 감독으로 데뷔한 김기덕. 그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통역병으로 일하며 미군을 통해 팝송, 영화 등 첨단 문화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이때 김기덕은 문화예술계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전창근 감독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영화가 하고 싶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영화계에 뛰어들게 된다.

김기덕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영화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내가 몸을 던져 개척한다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영화에 도전했다."고 밝혔다.

 

 

 

 

전창근 영화의 연출부에서 일하게 되면서 영화계와 인연을 맺게 된 김기덕. 그는 전창근, 한형목 감독의 조감독으로 활동하면서 영화연출을 배웠다. 특히 그는 한형모의 앞선 기술적 노하우와 전창근의 힘 있고 굵은 연출 방식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기덕은 1961년 영화 '5인의 해병'으로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쉬지 않고 영화를 발표하면서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였다. 청춘 코미디영화 '신입사원 미스터 리'(1962), 스릴러 구성을 가미한 멜로드라마 '악인은 없다'(1962), 우리나라 최초로 호스티스를 다룬 '칠십칠번 미스김'(1962), 최초의 야구 영화 '사나이의 눈물'(1963), 최초의 괴수 영화 '대괴수 용가리'(1967)가 그것이다. 김기덕의 가장 대표적인 영화는 '맨발의 청춘'(1964)이다.

1960년대 최고의 흥행감독이었던 김기덕 감독은 영화를 예술로서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측면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해 김기덕 감독은 "영화는 비용이 너무나 많이 드는 예술이다. 영화감독이 자기만 만족하는 영화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작품성이 미흡한 영화도 있지만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강화한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고백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오는 9일 오전 11시다. 장지는 성남 모란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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